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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인터뷰

INTERVIEW

사람 중심 병원을 디자인하다, ‘치유 공간 디자이너’ 노태린 동문

  • 조회수 739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24-08-14
  • 치유 공간 디자이너 노태린 동문(사학과 89) 인터뷰


“공간은 공간 자체로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치유 공간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노태린 동문(사학과 89)의 지론이다. 삼성서울병원 분만실, 연세대 암 병원 소아암센터 등 주요 병원을 디자인한 그에게 병원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공간을 넘어, 아름다움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치유의 공간이다. 


환자와 의료진, 병원 종사자 모두를 고려한 공간을 만드는 노태린 동문의 이야기를 숙명통신원이 들어봤다.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89학번으로 사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인테리어디자인 석사, 2019년 공간환경디자인 박사 학위를 취득한 노태린입니다. 현재 공간 디자인 회사 노태린앤어소시에이츠 대표이자 인천가톨릭대학교 헬스케어디자인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 어렸을 때부터 예술 분야를 좋아했는데 학부는 사학과를 선택하셨어요. 그러다 대학원에서 인테리어디자인과 공간환경디자인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저는 미술에 관심과 소질이 있는 아이였어요. 회화과에 입학해 미술학도가 된 제 모습을 꿈꿨죠. 그러다 중학생 때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고고학자와 역사에 관심이 생겨 사학과에 진학했어요. 사학과를 졸업하고 뭘 할지 고민하다 대전에서 인테리어 회사를 창업했어요. 당시 헌 집을 새집처럼 고쳐주는 프로그램이 인기여서 인테리어 열풍에 뛰어들었죠.


작게 시작한 인테리어 회사가 인기몰이하게 됐는데, 본 전공인 역사학으로는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인테리어디자인 석사를 취득했어요. 이후 병원 리모델링 업무를 중점적으로 맡으면서 헬스케어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공간환경디자인 박사도 취득했어요. 


3. 동문님은 여러 공간 디자이너 중 ‘치유 공간’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어요. 치유 공간 디자이너는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 '치유 공간'이라고 하면 아픈 사람들이 있는 병원을 떠올려요. 병원을 아프고 무서운 장소로 인식해서 병원이 하나의 환경이라는 생각은 잘하지 못해요. 하지만 저는 공간 디자이너로서 환자의 고통과 공포를 완화해 주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전 병원 공간에서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편안함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기, 빛, 색깔을 고려해 디자인하는 ‘헬스케어 디자인’을 추구했습니다. 헬스케어 디자인을 한국어로 번역해 치유 환경이라고 부르고, 치유 환경을 설계하는 사람을 치유 공간 디자이너라고 해요. 따라서, 치유 공간 디자이너는 치유 공간을 관찰하고 이해하며 환자, 의사와 간호사, 병원 청소부까지 모두 고려한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4. 많은 장소 중 주로 병원을 디자인 장소로 선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인연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어요. 생계를 위해 인테리어 회사를 시작하고 제 아이가 다니는 학교 옆 병원 디자인을 맡게 됐는데, 그 병원이 제 삶의 전환점이 됐죠. 병원은 집, 유치원, 학교와는 다른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 장소였어요. 제 경험을 담아 첫 책인 '종합병원 리모델링'을 출간하면서 종합병원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로 알려졌고, 여러 병원 디자인 프로젝트를 맡았어요. 우연과 운명이 맞물렸다고 생각합니다. 


노태린 동문이 디자인한 대전 성모병원 임종실. 버려진 창고를 마치 창문이 있는 듯한 온화한 병실로 바꿔 임종을 앞둔 환자가 머무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5. 20년 넘게 일한 공간 디자이너로서 인테리어 업계에서 활동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소통과 공감 능력이 공간 디자이너의 기본적 소양이죠. 온전히 내 머릿속에 내재한 아이디어를 구현시켜 작품을 창작하고 전시하는 예술가와 달리, 공간 디자이너는 고객과 소통하고 고객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정확한 니즈를 반영한 디자인을 만들어 내야 해요. 설령 내가 디자인한 결과물이 마음에 든다고 해도 고객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되죠. 


무엇보다도 저는 인테리어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과 수용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속가능성과 수용성 안에는 고객을 위한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체력과 끈기, 망해도 일어날 수 있는 용기가 포함돼 있어요. 


노태린 동문의 저서.


6. 지난 6월, 저서 「공간은 삶을 어떻게 치유하는가」를 출간하셨어요. 이 책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치유 환경 디자인에 대한 모든 것을 요약 정리한 책이에요.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공감과 배려, 고객인 의사와의 소통, 그리고 디자이너를 위한 조언도 적혀 있어요.


디자인 전공자를 보면 굉장히 창의적이고 개성이 강한 사람이 많아요. 그렇지만 자신보다 더 지적인 사람을 고객으로 만나는 경우, 고객의 의견만 반영해 개성이 사라지기도 해요. 그래서 디자인도 다른 학문처럼 증거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말해주고 싶어요. ‘이 방향에서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데, 빛이 많이 들어오는 경우 환자의 치유 속도가 빨랐던 사례가 있다’ 같은 근거를 제시하면서 디자인을 어필하도록 말이죠.


7. 이 책에서 ‘신경 건축학을 토대로 치유의 힘을 가진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구절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이 내용이 적용된 공간의 실제 사례를 소개해주세요.


신경 건축학은 건물 및 환경의 설계와 조합을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감각적 측면에서 고려하는 학문이다. <편집자 주>


‘2018 K-디자인 어워드’ Communication Space(소통 공간) 부문에서 수상한 ‘민트 병원’이 좋은 사례입니다. 제가 병원을 디자인할 때, 디자인 요소 하나하나를 설명한 ppt를 제작했어요. ‘대기 공간의 색을 이런 색으로 했을 때 사람들이 빨리 안정감을 느낀다’, ‘병실을 이곳에 배치해야 직원들이 환자 상태를 확인하기 쉽고, 일의 효율이 높아진다’와 같이 말이죠. 그 파일을 원장님께 보여주면서 설득했고 다행히 그 의견이 수용됐습니다.


민트 병원 디자인 기획안 일부.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지루함을 완화하는 디자인을 완성했다.


8. 과거 인터뷰에서 동문님은 교육 분야에 종사하고 싶다고 하셨고, 현재 인천가톨릭대 융합디자인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에게 직접 디자인할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싶습니다. 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모두 이런 말을 했어요. 수업을 통해 클라이언트와 소통, 공감하고 디자인을 어필하는 방법을 직접 터득할 수 있었고, 특히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요. 


제 수업은 보통 3, 4학년 학생들이 수강합니다. 이들은 디자인을 많이 해봤기에 실무에 투입돼도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과 확신이 넘친 상태예요. 하지만 최근에 발달 장애, 경계성 지능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을 디자인하도록 했는데, 소통 측면에서 큰 벽에 부딪힌 적이 있어요. 클라이언트에게 화려한 ppt, 전문 용어를 사용해 디자인을 설명했지만, 그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간과한 거예요. 결국 피드백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면서 디자인 과정이 쉽게 진행되기 시작했어요.


9.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동문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공간은 자연스럽게 삶에 녹아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간을 아름답게 꾸몄다고 해서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죠. 마치 침대에 자연스럽게 누워서 잠을 자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런 행동이 자연스럽게 유도되도록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 저에게 디자인의 정의입니다.



10. 앞으로 동문님이 디자인할 공간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나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 이 공간은 쓰면 쓸수록 잘 디자인 되어있구나’라는 인식이 남도록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디자이너 일을 계속하면 이상하지 않겠어?’라는 편견도 깨고 싶어요. 할머니가 되어 손녀와 주변 지인을 위한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오래 활동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22기 이시진(문화관광학전공 22), 23기 서예린(문헌정보학과 24)

정리: 커뮤니케이션팀